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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유퀴즈 박건호 역사 수집가 계기 태극기 손기정 안중근 세종대왕

by Amanda11 2020.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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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호 52세

역사 선생님&수집가

27년째 학생들을 가르치는 역사 선생님

지금은 학원에서 학생원 교육

어떻게 역사 선생님에서 컬렉터로?

학생들에게 보여주면 흥미를 끄니까

한 시간 수업 50분이면

수업 중간 몇 개만 보여줘도 관심 집중

진품명품TV쇼 보는 기분으로

수업들어요 너무 재밌어요.

수집에 관심을 가진 계기

대학 역사학도로서

1학년에 떠난 답사

선사 신석기 유적지에서

'V'자 모양의 파편 발견

심지어 한 개도 아니고 네 다섯 점

그때 전율을 느껴버림(계기)

빗살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신석기 시대의 조각과

운명적인 만남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컬렉터의 길로

이걸 학생들에게 보여줬을 때

손에 쥐고 눈을 감아보렴

손으로 직접 그 시간을 느껴보도록

이게 만 년이 됐다고 생각해봐

빠져든다 빠져들어

누가 시를 쓰신 건가?

병자년 4월  5일 이죠

강화도 조약으로 기억되는 병자년

병자년, 즉 1876년 150년 된 문서

그런데 이게 뭡니까...?

병자년이면 강화도조약으로 만 알고 있는데

병자년에 왜 가뭄 이야기가 나오지?

알고 보니 병자년은

19세기 최대 가뭄이었던 해

"내가 모르는 역사가 있구나

내가 알던 역사는 반 쪼가리 역사였구나" 깨달음

교과서 이면의 역사를

한 번 찾아 봐야겠구나

공식적인 역사에서 다루지 않는

이야기도 있다는 것

그 해에 있었던

실질적인 이야기를 한번 해줘봐야겠다.

150년 전 병자년 가뭄이 얼마나 심했냐면

별에서 온 그대 라는 프로그램

병자년 방죽을 부리는 군 = 건방지다

병자년에 온 데에 가뭄이 들어버리니까

건 방죽, 마른 방죽

방죽 : 물을 막기 위해 쌓은 둑

병자년 건방죽 건방지다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공감이 되는 이야기

대한민국 최초의 실

크리스마스 실 Christmas Seal

1904년 덴마크에서 시작한 모금으로

전 세계 항결핵 운동의 상징

이 실의 원판 그림

이 그림에 중요한 사연이 있습니다.

원래 처음 이 실이 이렇게 나왔거든요.

초판, 재판

기와가 있고 산의 크기가 다르다.

일제가 이걸 금지해서 압수를 해버렸다.

이유는 산이 너무 높게 그려졌다는 이유

금강산은 그린것인데

금강산은 독립정신을 심어준다.

기재한 연도를 보면 당시 소화라는

일본식 연호를 썼어야 했다.

일본식 연호를 쓰지 않은 점

그리하여 새로 바꾼 디자인

대문을 그려 산 크기를 줄였다.

대문으로 짓눌러

틀어막고자 했던 독립 정신

학생들이 아주 좋아하는

태극기? 일장기?

해방이 되고 직후 8월 15일, 16일에는

태극기가 없겠죠.

그래서 파란 색칠을 여기 하고요

현재의 태극기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괘를 네 개 그리는데

정성껏 그려진 위쪽과 달리

대충 그려진 아래쪽 괘

해방 직후의 열기

빨리 나가고 싶으니가

처음엔 정성 들여 그리다가 마지막에는

그냥 한 줄로 해서 당장 나가서

만세를 외치고 싶었을 순간

일장기 재활용 태극기

칠한 색은 희미해졌어도

고스란히 와닿는 열기

손기정 마라토너 친필 사인

이게 언제 사인...?

1936년 8월 12일

식민지 청년으로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달리고 또 달리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우승한 날이 8월 9일

우승으로부터 사흘 뒤인 사인

지금 사인이 몇 개 남아있는데

남아있는 사인 중 가장 오래된 것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이름도 기테이 손(당시 일본식 발음)으로

참가했는데 우승 후

그의 한글 이름으로 서명

글자도 제일 크죠

나는 한국인 이라는 정체성

영문 이름 아래에도

한문이 아닌 한글을 기재했다.

자신의 한글 이름조차

자유롭게 쓰지 못했던 때

힘주어 글자에 눌러 담은 그의 마음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 따고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렸죠

고개 숙인 챔피언

고향의 친구에게 보내는 엽서에

적어 보낸 세 글자 '슬프다'

사연이 있는 사진

태극기와 함께 환호했을 사람들의 모습

온라인경매에 화면으로

앞면만 나와 있었거든요

소개글에는 말세를 부르는 사람들

손으로 그린 태극기 그리고

배경은 술집으로 보이는데

역사적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봤더니

이 태극기를 보시면 화면상으로는

몰랐는데 이게 손으로 그린 거거든요

원래 그린 게 아니고

사진 위에 누가 이렇게 이렇게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도 불분명한 사진

이완용 붓글씨는 왜 모았습니까?

물론 원하는 건 안중근 의사 붓글씨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보통 경매에 나오면

제일 작은 게 5억

경천이라고 쓰고, 5억이라 읽는다.

더 긴 글은 그 이상의 가격을 호가

구매한 이후 못나고 더럽고,

아픈 역사도 역사이니까

저라도 모아두지 않으면 없어지겠죠

안중근 의사 붓글씨와 같이 전시가 되면

함께 놓였을 때

더욱 빛을 발할 안중근 의사의 정신

이런 건 가격이 20~30만 원

제일 비싼 게 40만 원밖에 안 합니다.

아중근 의사와 100배 차이가 나는 가격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보자면

안중근 의사는 승리자고

이완용은 패배자죠

글씨를 잘 쓴들

누구도 보고 싶지 않을 글

이완용 절개를 반영한 글

스스로 쓴 글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이완용 :

산속에 무엇이 기특한고,

바위 위에 소나무, 잣나무가 많구나

평탄하거나 험난하거나

마음은 한결같아,

사철 푸르러 한 빛이로다.

그 외에도 구하고 싶은 자료

안중근 의사의 붓글씨죠

며칠 굶어도 배가 부르겠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적인 날 하나

세종대왕 이야기

세종대왕이 왜 위대한가

한글 창제 외에도

또 중요한 이야기

전분 6등법과 연분 9등법

기존의 토지세는 생산량의 1/10을 거두었다.

기존에도 많이 있는 사람이 많이

적게 있는 사람이 적게 내는 건데

더 정확히 매기겠다.

전분 6등법 :

토지의 비옥도에 따른 6등급

연분 9등겁 :

농사의 풍흉에 다른 9등급

600년 전 부친 국민투표

투표 결과

찬성한 사람이 9만 8천 여 명

반대한 사람이 7만 4천 여 명

17만 2천 명한데 물었다는 이야기

그 당시 조선의 인구 약 70만 명

70만 명 중 17만 명의 의견을 물었던 세종

인구의 1/4 그중에서도 투표가 가능했을

인구의 규모를 고려한다면

조선 시대 최대 규모의 국민투표

그런데 그 당시 교통과 통신

발달이 안 됐으니까

반년 이상 걸렸을 국민투표

순탄한 길이 아니라 해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

과반의 의견이면 보통 사람이면 오케이 실시

그런데 반대가 7만 몇 표가 나왔단 말이에요

반대했던 민심도 고려하며 계속 수정해 나갔다.

세종이 논의를 시작하여

확정까지 걸린 시간 25년

누구도 억울하게 서금을 내선 안 된다.

이 법을 안 들어도 되죠

기존의 법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충분하죠

이 만드는 과정을 보면

모든 국면 국면 국면마다

편한 길을 가려고 한 것이 아니라 굳이

바꾸겠다 도전하는 정신

세종대왕의 행적에 담긴 진면모

정치인들이 편해지면

백성은 불행해지고

정부가 좀 더 고단하면

백성은 편안해지는 거죠

오늘날에도 귀한 정신

역사의 한 순간 속에

묵묵히 담긴 한 사람의 뜻

전시하고 싶은 이유는

가난 굶주림 전쟁 비극의 이야기를

회피하지 않고 의연하고 태연하게

삶으로 끌어들였다. 생활로 끓여들였다.

민중들의 생명력 미래와 삶에 대한 희망

을 보여준 물건들

하나의 흔적 속에서 수집하는 삶의 조각들

그냥 재떨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왜 재떨이가 됐는지

잠시나마 그려지는 당시의 모습

주관식 문제 :

옛날 역사책 제목에는

한자 '이'자 많이 쓰였습니다.

여기서 이것의 자는 이것을 뜻하는데요.

어떤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보여주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정답 : 거울

사소한 자료는 있어도

사소한 사람과 사소한 역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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