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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유대인 비즈니스 교육법

by Amanda11 2020.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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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다른 사람을 돕고자하고 사람 사람들 필요를 채우면 돈은 자연스럽게 벌린다.

목적은 서로 돕는것이고 결과는 돈으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돈을 버는것은 좋은일이고 돈을 벌지 않는 것은 나쁜일이다.

 

유대인의 토라란?

구약성서에 있는 창세기 출에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5개의 경전을 이야기 한다.

성경의 제일 처음에 나오는 5개 경전이다.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에 가장 먼저 생각하라

무한한 상상력 창의력 갈망은 창조의 원동력이다.

변화는 인간의 특권이다

우주는 관계와 통합의 결정체이다

돈을 버는 것은 영적인 활동이다

성취의 산물은 협력의 결과물이다

돈 버는 것은 최상의 봉사 활동이다

사람들과의 교류는 변화와 성장을 가져온다

호릐를 베풀 때 그 대상을 더 사랑하게 된다

 

삶은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라무엇을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성공의 필수요소는 자제력 진정성 의지력이다

나의 진정한 정체성은 다른 사람이 존재할 때 완성 된다

비즈니스의 운영법은 전문화와 협력이다

당신의 비즈니스에 전문성에 더하라

삶의 네 가지 차원을 동시에 발달시켜라

소득과 이익은 옳은 행동에 대한 보상이다

자유의 제한은 한계의 자유를 높인다

따를 수 없는 사람은 이끌 수도 없다

리더는 공유의 경계를 구별해야 한다

리더십의 가장 강력한 도구는 입이다

변화는 두려운 것이다

변화의 고통은 성장의 밑거름이다

삶은 변화하는 동영상이다

변화를 원할수록 불변하는 것에 의지해야 한다

미래가 불투명해도 끊임없이 전진하라

두려움에 정복당하지 마라

고요함 속에서 직관의 소리르 들어라

단어 문장 질문의 힘을 사용하라

돈에 대한 옳음 생각이 옳은 행동을 낳는다

돈에 대한 이해는 부를 창출하는 시작점이 된다

돈을 재고 셀 수 있어야 한다

돈은 영적인 것이다

수입 이상으로 소비하지 마라 수입 이상으로 베풀라

기부는 자신감과 삶의 가치를 높여 준다

내가 나를 보는 시선은 사람들이 나를 보는 기준이 된다

기부는 자연스러운 유대관계를 맺게 한다

히브리어에 없는 단어라면 그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은퇴는 심신을 병들게 한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오늘을 불행하게 만든다

인생은 비즈니스다

신을 찾지 않는 사람이라도 해도 신을 믿지 않아도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믿음을 가지고 있고 영향력 안에 있는것을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성경은 우리에게 잔디관리 하는 방법이나 물건수리 하는 방법 도자기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지만

전쟁과 분쟁 가족관계 운송 태어남과 죽음 농업에 적용할 수 있는 성경의 비밀을 제공한다.

돈에 관련된 성경의 비밀도 존재한다.

 

비즈니스는 간단히 말하면 좋지 못한 인간의 삶의 환경을 가장 효과적인 형태로 조율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한 형태로 1.전문화와 2.교원을 들 수 있다.

전문적 지식을 갖추고 교사가 되어라.

학교에서만 교사가 아니라.

자신의 노하우가 쌓이면 전문적 지식이 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라.

 

우리가 함께 사는 사람들이나 환경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어떤것을 얻는것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을 얻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비즈니스다.

따라서 비즈니스란 인류 문명이 존재하는한 영원불멸한 핵심원리다.

애덤스미스는 분업과 시장경제의 효율성에 대해 처음으로 널리 알렸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수천년부터 이런 사실을 배우고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이 주말 오후에 자기 차고 앞에서 차를 고치니라 시간을 보내느 모습을 찾기 힘들다.

어느도시를 가든지 유대인이 모여사는곳에서는 유대인들이 스스로 잔디밭을 깎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왜냐면 유대인 모두는 전문화의 힘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정비사에게 정비요금을 지불해서 BMW 자동차를 정비하게 하고

의욕넘치는 10대 청소년에게 잔디 정리르 맡긴다면 그만큼 시간이 남게 되고 정비사나 10대 청소년에게는 돈이 생긴다. 모두에게 좋은일이라는 것이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비즈니스는 고객이 있는 개인 혹은 고객이 집단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만약에 누군가가 당신이 하는 일이나 당신이 만드는 제품 혹은

당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자발적으로 대가를 지불할 의지를 보인다면

당신은 이미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중으로 볼 수 있다.

 

보수를 받기 위해 일하는 모두가 비즈니스중이기 때문에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는 사람들도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작은 일을 여러가지 하는것보다 자신의 시간을 한가지 일에 집중하고 전문성을 높여서 거래하면

모두에게 효율적이고 가처분소득 더 늘어날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경제적인 상호작용을 위해서 세운 계획의 근간이 전문화와 교환이라는 것이다.

정치철학자 토마스 홉슨은 인간이 혼자일 때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거칠고 야만적이고 짧다.

유대인들은 창세기와 신명기 내용의 바탕으로 전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

창세기 49장 1절에서 28절 내용을 보면 노인이된 야곱이 12명의 아들을 불러서 축복하면서

마지막 인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야곱은 그냥 간단하게 이제 나는 죽으니까 너희들 잘 되기를 축복한다.

하나님이 너희를 모두 돌봐주시길 바란다.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야곱은 굳이 아들 한명을 한명을 따로 각각의 독특한 축복을 했다.

비슷하게 신명기 33장에서도 모세가 죽기전에 산에 올라서

이스라엘 12명에게 각각의 개성적인 축복을 내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야곱과 모세의 축복뒤에 숨긴 개념은 바로 통일속의 다양성이다.

강대하고 오래가는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각 집하나 각 아들이 각각의 독특한 역할과 그에 필요한 역량을 갖춰야만 했다.

각자의 전문성을 갖추는 동시에 다른면에서 형제집하들과 연대하고 의지할 수 있어야 했다.

당신이 일하기로 결정한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삶이 더 풍복해질 수 있다.

여기서 문제를 내겠다.

당신이 도자기 방문판매 훈련을 마치고 초보 판매원들이 한자리에 모았다.

매니저가 보수 지급 방법을 2가지중에 선택하라고 했다.

1.매주 250달러의 기본급을 받는 대신에 판매급의 10%를 수수료로 받는 방식이다.

2.기본급 전혀없고 판매금의 40%수수료로 받는 방식이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첫 번째 서명하려는 순간에 깨달아야 된다.

만약에 내가 물건을 제대로 팔지 못하면 회사에서 내게 매주 250달러를 꾸준히 줘야될 이유가 무엇일까?

만약에 내가 물건을 잘 파는 재능이 있다면 왜 물건을 팔때마다 10%만 받을까? 

40%를 받을 수 있는 선택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다시 생각해본다면

내가 물건을 제대로 팔지 않으면 회사에서 내게 주급을 줄 이유가 없다는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두번째 선택지를 선택해야 한다.

 

매니저는 첫번째 선택지를 선택한 신입사원들을 모두 해고 했다.

인간은 잠재의식속에서 신을 모방하려는 속성이 있다.

티비가 그렇게 사람들을 홀리는 이유는 우리에게 신의 편제성을 맛볼 수 있게 한다.

편제성이란 모든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신은 언제어디에나 존재한다.

우리가 이것을 맛볼 수 있는 방법은 거실에 앉아서 티비를 틀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이다.

결구 티비는 신의 전능한 환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이다.

똑같이 항공여행도 마찬가지다.

배를 타는편이 비행기를 타는거보다 훨씬 저렴하고 훨씬 편안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차피로와 좁은공간에서 견뎌야되는 불편함을 감내하면서

순식간에 대륙과 대륙사이를 돌파하려고 한다.

이것은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난 신과 같이 시공간에 얽매여있다는

우리의 인간의 근본적인 제약을 극복하고 싶은 우리 자신의 갈망과 노력의 결과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무한을 향한 갈망을 심었다.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절대로 만족을하면 안되고 

언제나 행복한 것은 좋은것이지만 만족감은 가장 피해야할 일이다.

 

불교와는 상반되는 가르침이다.

인간은 자신을 변화시킬수있는 무한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인간만의 능력이다.

동물은 자신의 모습을 벗어나는 일이 없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유대인 격언에 이런말이 있다.

가난하기 시작하는 것은 부끄러운것이 아니나

가난에서 벗어나는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2차대전 당시 나치의 박해에서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고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상처입은 영혼과 망가진 몸을 가지고 미국에 빈손으로 온 난민들이였지만

이들은 유대인의 궁극적인 원칙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오늘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내가 내일 있을곳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만약에 당신이 인간은 모두 힘이 있고 개개인의 천성이 독특하며 자신을 완전히 뒤바꿀수 있는 힘이 있다

이 사실을 모른체 살아간다면 치명적인 장애를 안고 사는것이나 다름없다.

성경을 읽어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전의 자신과 달리 더 나은 사람 더 친절한 사람 더 강한 사람

더 효율적인 사람 더 권위있는 사람 더 성공적인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히브리를 뜻하는 원래 히브리 단어는 이브리다.

그 뜻은 가로지르는자이다.

다시 말하면 히브리 민족의 자부심의 징표는 그의 신분이 한쪽 끝에서 정반대의 다른 끝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접근법을 취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이나 혹은 유대인에게 히브리라는 용어의 의미는 후손들의 운명은 석판에 새겨지지 않았고

변화할 수 없게 고정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해준다.

창세기 12절 히브리 민족의 시조 아브람 이야기가 나온다.

여호와가 너는 너의 고향와 친적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에 가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고대의 유대현자들은 정말 중요한 질문을 한다.

왜 여호와께서는 널리 알려진 이 명령 너의 고향을 떠나서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떠나가라는

명령을 다른 사람도 아닌 아브람에게 내리셨을까?

이 구절 전에는 아브라함이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삶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의 고결한 성품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왜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여호와는 아르바함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 명령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아브라함만이 명령을 받들고 자신의 고향땅을 떠난것이다

아브라함 스스로 선택한것이다.

여호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같은 명령을 내리고 있다.

이것을 따르는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이다.

우리가 익숙한 편안한 환경에서 벗어나서 그의 초대를 받아 떠날때가 되었으니

자신의 말을 따라라 이렇게 말을 따라라 말을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는 도전할 기회가 있고 새로운 분야로 도전할 수 있는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변화시킬 때 어떤 형태로든 고통을 느낀다.

예를 들면 이혼보다 고통스러운 변화는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경험도 굉장히 고통 스럽다. 그러나 잘못된 관계속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그 관계를 끊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둘 사람의 이혼은 오히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기회가 된다.

제국이 무너지면 새로운 강국이 형성될 수 있고 폐허가 된 건물이 무너지면 새로운 건물을 지을수 있고 원자의 핵 분열은 막대한 에너지를 발생시키고

이 모든것의 공통점은 파괴되고 변화하고 분리되는 모든것에는 항상 고통이 따르지만 개인과 가정 국가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이란 의미는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무한의 능력을 가진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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